묵상 노트, 다시 읽게 되는 것만 남기는 법
2년 동안 쓴 큐티 노트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다시 펼쳐봤는데, 다 읽고 남은 감상은 하나였습니다. 이 중에 지금 쓸 수 있는 게 한 줄도 없다.
노트는 빼곡했습니다. 그날 본문, 밑줄 그은 구절, 설교에서 들은 세 가지 대지, 어디선가 읽은 해설. 글씨도 단정하고 분량도 상당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페이지를 봐도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생각을 안 했으니까요. 베끼고 있었습니다.
베낀 것은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묵상 노트가 실패하는 가장 흔한 방식이 이겁니다. 본문을 읽고 나면 뭔가 남겨야 할 것 같아서, 가장 마음에 닿은 구절을 옮겨 적거나 설교자가 나눈 대지를 받아 적습니다.
문제는 옮겨 적는 데는 이해가 거의 필요 없다는 겁니다. 한 단락을 통째로 베끼면서도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오늘 큐티했다"는 뿌듯함은 오히려 더 강하게 남습니다.
다시 읽을 때 드러납니다. 그 글자들은 다른 사람의 것이고, 나는 운반만 했습니다.
실제로 다시 읽게 되는 네 가지
지금까지 남은 건 네 종류뿐이고,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전부 내 말로 썼다는 것.
하나, 다시 말하기
한 단락을 읽고 나서, 안 읽어본 사람에게 설명하듯 한두 문장으로 풀어 씁니다.
쉬워 보이지만 막상 하면 막힙니다. 막히는 자리가 바로 내가 사실은 이해하지 못한 자리입니다. 읽고 나서 기분 좋게 덮는 것보다 이게 훨씬 쓸모 있습니다.
둘, 질문
이해가 안 되는 곳,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곳, 앞 내용과 어긋나 보이는 곳을 적습니다. 질문만 적고, 답을 서두르지 않습니다.
처음엔 그 자리에서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찾아낸 건 대부분 남의 결론이었고, 외워도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남겨두면 몇 달 뒤 다른 본문을 읽다가 실마리가 풀리는 때가 옵니다. 그렇게 얻은 답은 잊히지 않습니다. 3년째 그대로인 질문도 있는데, 그게 정상입니다.
셋, 걸리는 한 마디
본문에서 마음이 걸려 멈춘 자리. 단어 하나여도 되고 반 절이어도 됩니다. 왜 걸렸는지까지 한 줄.
"걸렸다"는 건 내 삶의 어딘가와 부딪혔다는 뜻입니다. 그 부딪힌 자리를 적어두면, 나중에 읽을 때 본문이 아니라 그때의 내가 보입니다. 이게 묵상 노트가 일기와 다르면서도 일기의 몫을 하는 부분입니다.
넷, 한 줄 기도
거창할 필요 없습니다. 본문에서 나온 것을 그대로 돌려드리는 한 문장. "오늘은 이걸 내려놓게 해주세요" 정도면 충분합니다.
기도문을 길게 쓰려고 하면 글이 됩니다. 한 줄이면 기도로 남습니다.
노트가 쓸모 있는지를 가르는 기준
네 가지 다 안 해도 됩니다. 하루에 하나만 해도 됩니다. 기준은 하나입니다.
한 달 뒤에 펼쳤을 때, 본문이 아니라 내가 보이는가.
본문은 성경에 있습니다. 설교 대지는 교회 홈페이지에 있습니다. 노트에 있어야 할 것은 그날 그 본문 앞에 앉아 있던 나입니다. 그게 없는 노트는 아무리 두꺼워도 다시 읽지 않게 됩니다.
남는 노트는 짧습니다
2년치 노트에서 건진 건 몇 페이지였습니다. 다 짧았고, 다 삐뚤빼뚤했고, 다 그날 내 말이었습니다.
분량을 줄이세요. 베끼지 마세요. 막히는 자리를 적으세요. 그러면 다시 읽습니다.
Vine Bible의 노트는 어느 구절에든 바로 달 수 있고, 태그로 흩어진 생각을 한 줄로 모을 수 있습니다. 전체 노트를 본문 검색할 수 있어서, 몇 달 전에 남긴 질문을 다시 찾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